[책리뷰] 어른의 어휘력

ttoance 2025. 7. 2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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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력은 말발 센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려면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긴 해도 낱말에 대해 ‘잘’ 알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잘’이란 다른 낱말과 함께 배치했을 때 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 파악한다는 뜻이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 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1장. 이래서 어휘력이 중요하다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는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한다.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다. 자신의 그릇이 작아 상대의 말을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한 채 흘려버리거나 심지어 제멋대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진심이나 진실을 깨달았을 때면 이미 늦어 과거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밉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 하는 식의 감(感)을 얻는다. 신비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만 겪은 일을 당신에게 알리고, 당신이 겪은 일을 내가 알 길은 언어밖에 없다. 언어는 강철보다 견고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려 금 가게 하고, 틈이 생기게 하고, 마침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언어의 한계를 서로 달리 살아온 삶의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된 거라 믿어 소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휘를 선택할 때 조금은 더 친절해질 수 있다. 상대의 처지에 적절한 낱말을 찾게 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에 등장하는 ‘배’가 상징한 것은 ‘홀로코스트’27였다.

 


내가 대상을 가리킨다.
대상을 통해 지각30하거나 인지31한 것을 표현한다.
지각과 인지를 통해 얻은 자신의 감각이나 개념, 판단, 감정 등이 타당한지 확인한다.
조정하고 조율하는 단계를 거친다

 


관성이나 타성은 건성41이나 비슷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반대말은 ‘관심’42이다. 나는 사람이 제일 가지기43 힘든 것이 관심이라 여긴다. 강퍅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 가득 차 깃털 한 개조차 꽂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프랑스어 관용구를 처음 들었을 때 그림 같았다. 해가 훤히 뜨면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개인지 늑대인지는커녕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슴푸레 형태는 보이지만 개인지 늑대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시간이 있다. 하루에 두 차례 찾아온다. 한자로는 ‘여명’과 ‘황혼’, 우리말로 ‘갓밝이’와 ‘어둑발’이다.

 


오십이 되고 중견간부가 돼서도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회사 다닐 줄 미처 몰랐다. 이십대 때는 이런 감정을 분노라 여겼다. 상급자의 옳지 못한 태도에 대해 분노하는 거라고 말이다. 이제 알겠다. 분노가 아니다. 억울함이다.
인간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언69에서 ‘나의 세계’는 사고뿐 아니라 국가와 자연 같은 물리적 환경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 환경은 언어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에 영향을 주고 같은 작품을 보고도 다른 것을 연상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2장 어휘력을 키우는 필수 조건

 


또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국가가 아닌 곳은 어디인가?’라는 사지선다형 문제가 출제되고 보기에 한국이 있다면 나는 동그라미를 쳤을까, 말았을까.
정답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점수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동그라미를 쳤을 것이다. 틀린 답을 맞는 답이라 한 스스로를 멸시했을 것이다. 내 경험을 틀린 답으로 만드는 문제를 기어이 출제하고 만 현실에 슬픔과 좌절을 느끼며 무력감에 길들여졌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방구석에 처박혀 종이 나부랭이에다 끼적이기나 했을 거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당신이 못 본 것에 대하여,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 내가 못 본 것에 대하여.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We cannot think what we cannot think.).71’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반대말은 주장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숩니다.
소나무한테 가서 대나무에 대해서 묻고
대나무한테 가서 소나무에 대해서 묻고
이래서야 제대로 된 답을 들을 리 없습니다.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없어섭니다.
상대방이 나를 속여서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속아섭니다.

 


이는 언어적 직관으로 스스로 획득74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적 직관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적 상상력, 은유, 함축, 의인화 운운해봐야 난해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다.

 


작가를 존중하는 PD로 비치고 싶었을 텐데 ‘쓸’ 대신 ‘함께 일할’이라는 말이 그리 어려웠나.
어쩔 수 없다. 말은 인격이다. 고사성어나 전문용어, 어휘를 많이 안다고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췄다 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꾼다82’고들 한다. 사회변혁이나 개혁을 의미한다. 나는 멀쩡하니까 세상만 바꾸면 좋아질 것 같은 뉘앙스가 없지 않다. 세상은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언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언어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타고 나는 것은 인성이다.—

 


성별이나 출신, 외모, 나이 등을 차별하는 어휘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여자가 할 수 있겠어?”, “남자가 그것도 못 해?”, “뚱뚱해”, “키가 작아”, “어린 사람이 뭘 알아?”, “나이가 있는데 할 수 있겠어요?” 등이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도 해당한다. “여자가 능력 있어”, “남자치고 세심하네”,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 “좋은 대학 나와서 스마트해”, “예쁘게 생겼어”, “키가 크고 날씬해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려”, “젊은 사람이 아주 예의바르고 겸손해”, “젊게 사시네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이세요” 등등.

 


평가가 해악인 이유는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급을 왜 매기겠는가? 물건이나 상품, 가축 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다. 무엇이 쓸모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차별로 이어진다.

 


따라서 공감능력을 갖춘 이들은 어휘 선택과 태도에 신중하다. 남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이며 제한적이고 시종 감정적인 어휘’ 따위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주효한99 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개별자108로서 세상을 살아가지만 비슷한 궤도에 놓인다. 통과하는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아무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생명의 정교한 그물망’,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생태계를 두고 쓴 은유적 표현이다. 그물망 어느 지점에서든 교란이 벌어지면 그 울림이 그물망 전체로 퍼진다는 의미였고 나는 이 표현에서 ‘미러 터치 공감각’109과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을 떠올렸다

 


개별자; (철학) 자연과 사회에 존재하는 개개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과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반대되는 개념이 보편자이다.
보편자; (철학) 개별 사물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질적 특성을 이르는 말

 


인생은 단순치 않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못하다고 계속 못하라는 법 없고 반대로 낫다 해서 계속 나아지라는 법도 없다. 반세기를 사는 동안 깨우친 게 있다면 누군가의 오늘을 보고 함부로 내일을 예측하지 말자는 것이다. 고작 한두 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못된 습관이다

 


3장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들

 


상대가 가진 잣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내가 가진 잣대만 믿으면 세상과 사람이 미워진다. 시대가 달라지면 자신이 들고 있는 도구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꿔 들기 싫으면 최소한 상대가 들고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싸우지 않는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 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깨우친160 사실은 자신에게 익숙한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도, 사고력을 확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4장 어휘를 만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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