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ttoance 2025. 4. 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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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취향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우연히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취향은 고귀한 안목과 타고난 미의식의 공통 감각이라고 말하는 칸트와는 달리, 부르디외는 취향은 사회가 만들어 낸 계급적 구별 짓기라고 말한다. 소득에 따른 소비가 계층화된 구조 안에서 우리의 취향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벼락같은 한마디였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비정한 세상에서 투쟁할 수 있는 무기를 발견한 것이다.

 



1장 취향 자본

 

부르디외는 자신의 취향 조사에서 위와 같은 예를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자본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바로 경제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이다. 경제 자본은 부동산, 예금, 주식 등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다.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은 유형의 재산이 아닌 무형의 상징이 자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 자본은 한사람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거나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맥을 뜻한다.

 

문화 자본이 경제 자본과 사회 자본에 끼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경제 자본은 후세의 학력 자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도 본인의 학력 자본을 바꾸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경제 자본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하게 길은 학력 자본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교육을 통한 학벌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다.

 

문화 자본은 학습과 경험으로 취득할 수 있는데 자신이 경험하고 습득한 지식의 범위가 곧 그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의 범주를 뜻한다.이를 일찍부터 깨달은 18세기 영국의 상류 계층은 자녀들이 빠르게 고급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그랜드 투어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트레바리와 클럽하우스의 사례를 통해 관계 자본을 쌓기 위한 대중의 열망을 알아보았다. 두 서비스 모두 기존에는 없던 획기적인 관계 서비스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긴밀한 관계 자본을 만들어 주는 것은 숙제로 남았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계 자본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관계망을 통해 상호 간의 인식과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문화 자본에는 세 가지 분류가 있다. 첫째, 나의 몸과 정신에 체화된 문화적 코드다. 이는 나만의 관성 또는 습관으로 발현된다. 둘째, 문화적 가치가 있는 예술품 또는 어떤 물건이다. 셋째, 학교 졸업장이나 증명서 등으로 제도화된 학력 자본이다. 이 중에 예술품과 제도화된 학력은 경제 자본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경로가 있다. 이는 문화 자본의 상징을 구매하여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상품으로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돈으로 취향은 살 수 없어도 계급은 살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 자본은 곧 계급이다. 문화 자본에서 학력 자본은 사교육, 유학, 기부금 등 다양한 방향으로 상품이 개발되어 있다.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빌라에 살면 전세보증금 사기를 당해도 괜찮은 사회를 형성해 놓고, 결혼과 출산이 단순히 배부른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던 우리 사회는 결국 초저출산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가장 보편적 문화인 결혼과 출산이 이제 특정 조건을 갖춘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계급마다 누릴 수 있는 문화 자본이 다른 사회를 우리는 계층 사회라고 부른다

 

 

2장 취향 소비

 

가진 자본이 오직 노동밖에 없어 지속적인 월급 계약이 필요한 사람을 우리는 노동자라고 부른다. 월급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며 지급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금노동자 수는 약 2,200만 명이다. 자영업자를 제외한 노동 가능 인구 3,100만 명을 기준으로 성인 10명 중 7명이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여기서 전체 임금근로자의 중위소득은 250만 원이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10명 중 6명의 첫 월급은 200만 원 미만이다. 급여가 충분하지 않아 삶이 삐걱거리는 일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대체로 모든 노동자가 겪는 일상다반사다.

 

 

우리에게는 최저생계비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있다. 각자의 삶에 맞는 ‘최소 삶 유지비용’이다. 전체인구 기준으로 표준화된 금액이 아니라 오직 나의 사정을 고려한 삶의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월세, 주변 물가, 직장의 거리, 미래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비용이 포함된 금액이 바로 나의 안전망이다.

 

 

취향은 오랫동안 상류층의 전유물로 소비되는 개념이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판단 능력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나만의 문화를 가지는 것으로 나를 위해 기꺼이 까다로워지는 행위인데 이런 문화를 갖는 것 자체가 충분한 자본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와 가문은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삶의 철학이 있으며 대중이 선호하는 상징이 있다. 이처럼 브랜드는 사람들이 추종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가문은 혈연이나 특정한 조건을 달성해 부여받는 것이고 브랜드는 오직 개인이 가진 경제 자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브랜드는 개인이 소비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쉽고 성공적인 상징 자본이다.

 

겨우 고른 이 차는 몇 가지 기준을 통과했다. 나는 경차를 무시하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를 가진 차, 당장 고장 날 염려가 적은 새 차, 대중적이고 신뢰가 높은 브랜드의 차, 가능하면 타는 사람이 적어 희소성이 있는 신형 모델인 차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자동차 계급도에는 없는 차이길 원했다.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차를 구매한 모든 순간이 나의 위치와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선택의 과정이었다.

 

 

3개월 동안 애써서 고른 차는 과연 나의 취향일까, 아니면 내가 강요당한 계급의 취향일까. 아반떼를 사고 싶지 않아 수많은 자동차를 비교하고 견적을 받으며 새로운 차종을 선택했다. 틀에 박힌 계급도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반떼와 겨우 200만 원 차이 나는 나의 SUV는 결국 계급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차는 결국 나의 취향이기도 하고 나와 같은 사람들의 사회적 취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위험성이 적은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 욕망에 이끌려 외제 차를 사지 않았고 효용에만 집중해 경차를 고르지 않았다. 최소한의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면서 효용을 챙긴 결정이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개인의 아비투스에 따르면 개인의 선택은 온전히 개인적이지 못하고 사회환경과 개인의 주변 환경 요구한 취향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연봉 대비 가격대별 차량을 나눈 자동차 계급도는 권위가 생기고 해당 계급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압력을 주는 것은 개인의 선택보다 더 높은 권위로 선택을 제한토록 하는데 이를 상징 폭력이라고 한다.

 

 

“사람의 행복은 필시 효율의 정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츠타야의 대표 마츠다 무네아키의 말이다. 효율적이지 않은 츠타야의 배려가 기억에 남는다. 츠타야를 방문하고 난 후 다른 브랜드나 공간들도 내 돈을 가져갈 때 조금 더 예의를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온사인을 반짝이며 시선을 훔치고 각종 옵션으로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어떻게 하면 고객의 돈을 획득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방식은 그만 접어 주기를 바란다.

 

‘효율적인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인가?’ 다년간 IT 회사에 다니며 느껴왔던 나의 오래된 질문이다. 회사는 모든 것을 효율화시키는 곳이다. 효율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서로 얼마나 잘 효율화했는지를 자랑하고 경쟁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점점 회사를 어려워하며 독립적인 노마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효율화의 비인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3장 취향 계급

 

계급과 신분은 서로 비슷한 뜻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의미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중세 유럽과 조선의 왕조시대는 사람의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는 혈통과 가문이 세습되는 신분 사회였다. 신분 사회에서는 계급, 특권, 관습, 문화 등 다양한 사회적 권리가 이어진다. 반면 계급은 주로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영향력이 유사한 사람이 모인 계층을 뜻한다. 그러므로 계급은 신분의 세습과는 달리 일정 수준의 재산을 확보하면 획득할 수 있는 지위에 가깝다.

 

 

계급을 뜻하는 ‘Class’는 17세기 로마가 군대를 모집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통치자였던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안정적으로 군대를 운영하기 위해 로마 시민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6개의 계급을 만들었다. 재산의 총량에 따라 1계급부터 5계급까지 계급을 나누었고 각 계급에 따라 필요한 징병에 필요한 군인 수를 할당했다. 가장 높은 계급은 1계급이었고 높은 계급일수록 더 많은 군인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재산이 없어 5개의 계급 속하지 못한 계급이 있었다. 군인을 사거나 육성할 수 없는 계급 프롤레타리아다. 이들은 별수 없이 자기 아들을 군대로 보내야 했다. 각 계급이 군인을 보내는 수는 곧 나라에 이바지하는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고 보내는 군인이 많을수록 더 많은 투표권이 주어졌다.

 

 

부르디외는 특정 사회를 연구하면서 선물을 주는 행위가 선물을 받는 사람으로부터 자연스러운 복종을 끌어내는 상징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확인했다. 개인이 자신의 경제 자본을 감소시켜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과정은 경제 자본을 관계에 투자하여 사회 자본으로 전환 시키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에 ‘내가 당신에게 이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포함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관계 자본을 더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유명 연예인의 일탈을 다룬 뉴스를 계속 내보내면 대중은 정치와 사회 이슈에서 멀어진다. 선거제 개편, 기본소득의 정당성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데 유명인의 도덕적 일탈 보도에 집중하여 쉽게 흥분하고 몰입하는 이슈를 재생산시킨다. 텔레비전이 오랫동안 바보상자라고 불려 온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만들어 대중의 탈정치화를 방조했기 때문이다. 사유하거나 생각을 깨우치는 시간이 아니라 텔레비전의 가십으로 시간을 소진하는 경우 우리는 그만큼 진실을 보는 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이론 중에 가장 신경 쓴 이론은 바로 장 이론이다. 장 이론의 개념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라는 커다란 사회장에서 개인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지역을 극히 좁혀 각자의 고향인 서울·천안·인천·부산 장에서도 개인은 역시 미미하다. 하지만 수원의 로터리클럽 회장이라면 개인의 위치는 달라진다.

 

 

대한체육협회가 법적인 결과와는 상관없이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선수들에게 출전금지 등의 징벌을 내리는 것도 장의 자율성에 따른 것이다. 장에는 그 장의 존속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있다. 그러므로 장에 속한 기존의 권력은 그 규칙이 깨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IT 스타트업 장에 있으면서 그동안 수없이 보고 경험한 것은 바로 장과 장의 치열한 대결이었다. 스타트업에 참여하는 것은 기존의 비즈니스 권력이 만들어 둔 장에 작은 돌멩이를 들고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존 장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돌로 깨트려 최소한의 내 편을 만들고 계속해서 나의 편을 불려 가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스타트업과 청년이 자본을 형성하며 살아남으려면 거대한 장으로부터 짓눌리지 않을 정도로 나만의 장을 형성하고 끊임없이 장내 충돌을 통해 자리 잡아야 한다. 나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함께해야 한다. 부르디외가 우리에게 알리는 장의 메커니즘은 영원불멸한 장은 없으며 누구나 투쟁을 통해 장을 만들고 장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힘의 역학 관계로 결정된 한 상태 속에서 장을 특징짓는 특수한 권위나 권력의 토대가 되는 특수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전 전략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적 재화의 생산 장에 있어서 그들은 정통을 방어하고자 한다. 반면, 자본이 가장 결여된 사람들(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거나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은 전복의 전략, 이단의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4장 취향 독립

 

노력에 집중하게끔 만드는 환경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최소한의 환경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개인은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결핍 속에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지금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더 존중하고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부르디외의 학문은 개인의 성찰을 위한 강력한 자기 분석 도구다. 개인에서 시작된 성찰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성찰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1차원적 비교는 상처와 혐오를 남기지만, 사회 구조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정립하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만들어 준다.

 

 

부르디외의 이론을 접한 독자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자본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는 현시대에서 사실상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먼저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자신의 지식이 자기 징벌적인 방법으로 이용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은 단순히 ‘취향은 계급이다’라는 주장을 증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가 형성한 계급화에 종속되어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성찰하면 벗어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 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바로 나를 둘러싼 사회 구조를 이해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발생한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과정은 상처를 객관화하여 나와 상처를 분리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을 혐오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인 『19호실로 가다』를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덤덤하게 나누는 19호실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세상은 때때로 형언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설명할 수 없음을 비정상이라고 치부하고 두려워한다. 그럴 때 우리는 수잔과 같은 선택을 하곤 한다. 더 이상 설명할 힘도 되돌이킬 기회도 남지 않아 상대방이 이해하는 수준으로 결말지어 버리는 것이다.

 

 

“불완전은 완전의 상위 개념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문장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님이 한 말이었다. 완전한 삶에 도달하면 그 완전함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 하지만 불완전은 더 나은 완전함을 위해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록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완전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삶은 아름답다.
나는 저항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기득권과의 경쟁을 회피하고 끊임없이 나의 기득권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저항 정신은 아무런 상징을 물려받지 못한 사람이 애써 상징을 만들어나가는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호신술이다.

 

 

국가와 대기업을 우선시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조용한 세대는 심지어 1950년~1960년 베이비 붐 시기를 거쳐 커다란 인구 권력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가장 평등했던 시기에 그들은 자본 획득의 기회를 독차지했다. 평균이 없던 사회에서 평균적인 교육과 평균적인 삶의 기준을 만들어 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집값이 내려가면 다들 집을 사려고 하죠. 그런데 안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빅데이터는 소음으로 봐요. 저는 소설가입니다. 신호보다는 소음에 관심이 많아요. 평소에 열심히 출퇴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돌연변이 같은 거죠. 이런 변화는 결국 수동적으로 분리해야 하는데 빅데이터는 돌연변이를 무시하죠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중략)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마음 문제’라는 명제가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오직 자신의 경험에 기대어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이해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오만은 접어두는 편이 좋다.

 

 

빅데이터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까지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설가의 다정한 글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과 이유를 실어준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김연수 소설가의 문장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문장이 나뿐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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